[4막 8부] 고양이에게 맡긴 생선, 선관위가 자행한 ‘셀프 감사’와 꼬리 자르기의 촌극

도둑이 스스로 판사가 되겠다고 나설 때

 만약 축구 경기에서 주심이 특정 팀에게 돈을 받고 편파 판정을 한 사실이 발각되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관중들은 분노하며 경찰의 수사와 강력한 처벌을 요구할 것입니다. 그런데 심판 위원회가 이렇게 발표합니다. “우리의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 경찰 조사는 받을 수 없습니다. 대신 우리 심판들끼리 모여서 며칠 조사해 본 뒤, 자체적으로 경고를 주거나 반성문을 쓰게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관중이라면 이 기가 막힌 상황을 납득할 수 있겠습니까? 도둑이 스스로 수사관이 되고 판사가 되어 자신의 형량을 정하겠다는 이 코미디 같은 상황. 안타깝게도 이것은 비유가 아니라,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심판이라 자칭하는 대한민국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실제로 벌어진 끔찍한 현실입니다. 지난 7부에서 우리는 선관위라는 폐쇄적인 성벽 안에서 벌어진 ‘아빠 찬스’ 채용 비리의 역겨운 민낯을 마주했습니다. 공채라는 바늘구멍을 뚫기 위해 피눈물을 흘리는 청년들을 철저히 들러리로 세우고, 자신들의 자녀에게만 ‘경력 채용’이라는 하이패스를 깔아준 수뇌부들의 탐욕은 온 국민을 분노케 했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사회를 진정으로 절망하게 만든 것은 채용 비리 그 자체보다, 사태가 터진 이후 선관위가 보여준 ‘수습의 과정이었습니다.

 외부의 혹독한 감시와 손길이 닿지 않는 이상부패한 조직이 자체적으로 다시 정상적인 조직으로 변모할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그러나 선관위는 “헌법기관의 독립성”이라는 낡은 방패를 또다시 꺼내 들고 문을 걸어 잠갔습니다. 외부 감사를 거부한 채 자신들끼리 이른바 ‘셀프 감사’를 진행했고, 비리를 저지른 수뇌부들에게 징계 대신 수억 원의 몫을 챙겨 떠날 수 있는 ‘명예로운 비상구’를 열어주었습니다. 이번 8부에서는 범죄를 저지르는 것보다 더 악랄한 범죄의 은폐, 선관위의 자정 능력이 어떻게 완벽하게 소멸했는지 그 처참한 붕괴의 현장을 추적합니다. 심판이라는 완장을 찬 자들이 권력을 사유화하고 어떻게 법의 망을 교묘히 빠져나갔는지, 그 ‘솜방망이 징계’와 ‘제 식구 감싸기’의 메커니즘을 낱낱이 고발합니다.

맹탕으로 끝난 ‘셀프 감사’, 면죄부 발급소로 전락하다

 채용 비리 의혹이 언론을 통해 연일 대서특필되고 국회의 질타가 쏟아지자, 선관위는 마지못해 자체 특별감사위원회를 꾸렸습니다. 외부 위원을 일부 포함시켰다고는 하나, 감사의 주체와 실무 조사를 담당하는 인력은 결국 선관위 내부 직원들이었습니다. 이 ‘셀프 감사’는 시작부터 태생적인 한계를 안고 있었습니다. 7부에서 언급했듯 선관위는 인사 교류가 없는 극단적인 폐쇄 조직이며, 거미줄처럼 얽힌 혈연과 지연, 보은으로 뭉친 ‘가족 같은’ 집단입니다.

  • 부하가 상사를 조사하는 모순: 감사를 진행하는 실무자들은 결국 이번 사태의 정점에 있는 사무총장이나 사무차장의 눈치를 보며 승진해야 하는 부하 직원들입니다. “사무총장님의 지시가 있었습니까?”, “면접관들에게 압력을 행사했습니까?”라는 뼈대 있는 질문을 직속상관에게 할 수 있는 직원이 누가 있을까요?
  • “법적 위반은 발견하지 못했다”는 기적의 논리: 몇 주간의 자체 감사 끝에 선관위가 내놓은 결론은 국민의 기대를 처참히 배신했습니다. 선관위는 “자녀가 채용되는 과정에서 일부 규정 위반이나 부적절한 지시(기안 결재 등)는 있었으나, 고위직들이 면접관들에게 합격을 청탁하거나 부당한 압력을 행사한 ‘구체적인 물증’은 발견하지 못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것은 감사가 아니라 ‘합법적 면죄부 발급’이었습니다. 이런 ‘보이지 않는 카르텔’을 파헤쳐야 할 감사위원회가, “서류상 지시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면죄부를 준 것입니다.

 더욱 가관인 것은 감사원의 직무 감찰을 대하는 선관위의 이중적인 태도였습니다. 당시 감사원은 국가 공무원 채용 비리라는 중대한 사안을 묵과할 수 없다며 선관위에 대한 전면적인 직무 감찰에 착수하겠다고 통보했습니다. 그러나 선관위는 또다시 “선관위는 감사원의 직무 감찰 대상이 아니다”라며 자료 제출을 거부했습니다. 이런 선관위의 주장은 헌법 제97조(감사원의 감사 범위)를 교묘하게 자의적으로 해석한 결과였습니다. 행정부처의 부패를 감시하는 감사원의 권한이, 독립기관인 선관위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궤변이었습니다. 과거 소쿠리 투표(부실 행정)나 북한발 해킹(보안 붕괴) 사태 때 써먹었던 만능 치트키인 ‘독립성 침해 방어막’을, 채용 비리라는 명백한 형사 범죄 앞에서도 똑같이 펼쳐 든 것입니다.

 선관위에 맹탕 셀프 감사. 그리고 외부의 감찰은 오만한 헌법의 자의적 해석을 방패 삼아 튕겨내는 오만함. 이 완벽한 방어선 구축 덕분에, 선관위 내부의 비위 직원들은 가혹한 형사 처벌이나 파면의 위기에서 벗어났습니다. 범죄의 소굴이 되어버린 조직을 정화할 수 있는 마지막 브레이크마저 완전히 파열된 순간이었습니다.

꼼수 사퇴와 전관예우, 수뇌부의 비상탈출극

 ‘셀프 감사’가 비위 직원들을 위한 부드러운 방석이었다면, 비리의 몸통이자 정점이었던 고위 수뇌부들을 위해서는 아예 금빛으로 장식된 ‘비상 탈출구’가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채용 비리의 핵심 인물로 지목된 박찬진 당시 사무총장과 송봉섭 당시 사무차장은 여론의 분노가 극에 달하자 돌연 사퇴 의사를 밝혔습니다. 겉으로는 “도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는 아름다운 포장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소름 돋을 정도로 치밀하고 계산적인 ‘꼬리 자르기’와 ‘기득권 챙기기’가 숨어 있었습니다.

 일반적인 국가 공무원법과 관련 규정에는 ‘의원면직 제한 규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비위나 부패 혐의로 감사원의 감사, 검찰의 수사, 혹은 내부 징계 위원회에 회부된 공무원은 자신의 마음대로 사표를 내고 도망갈 수 없도록 막아둔 법적 장치입니다. 사표가 수리되어 일반인이 되어버리면, 공무원 신분으로서 받아야 할 파면, 해임 등의 무거운 징계를 피할 수 있고, 무엇보다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에 달하는 퇴직금과연금을 온전히 챙겨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선관위의 수뇌부들은 공무원이라면 누구나 적용되는 이 규정을 철저히 비켜 가게 만들었습니다.

  • 징계 전광석화 사표 수리: 수뇌부들의 채용 비리 정황이 명백히 드러났고, 경찰 수사 의뢰가 거론되는 시점이었음에도 선관위는 징계 위원회를 열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들의 사표를 전광석화처럼 수리해 주었습니다. 범죄 혐의자가 공무원 신분을 벗어던지고 ‘자연인’으로 돌아가는 것을 조직이 발 벗고 나서서 도와준 꼴입니다.
  • 수억 원의 퇴직금 잔치: 파면이나 해임 등 중징계를 받으면 공무원 연금과 명예퇴직금이 반토막 나거나 아예 지급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징계없이 ‘의원면직(자진 사퇴)’으로 처리된 이들은 수십 년간 부은 공무원 연금을 100% 수령하는 것은 물론, 엄청난 액수의 명예퇴직금까지 고스란히 챙겨 떠났습니다.
  • 아랫사람에게 책임 떠넘기기: 정작 실무를 담당했던 인사과 직원이나 지방 선관위의 하급 직원들은 자체 감사를 통해 경고나 감봉 등의 징계를 덮어썼습니다. 위에서 지시하거나 은연중에 압력을 가한 수뇌부들은 수억 원을 챙겨 유유히 떠나고, 그들의 지시를 거역할 수 없었던 아랫사람들만 징계 기록을 남기며 ‘꼬리’로 잘려 나간 것입니다.

이들의 기막힌 비상탈출극은 단순한 도덕적 해이를 넘어선 조직적 범죄 은폐였습니다. 독립기관이라 우리 일은 우리가 알아서 한다”고 큰소리치던 선관위의 ‘자정 능력’이라는 것은, 결국 “우리의 수장은 우리가 챙겨서 내보낸다”는 조폭 영화에서나 볼 법한 ‘제 식구 감싸기’의 다른 이름에 불과했습니다. 

유권자가 선거법을 위반해 100만 원 이상의 벌금형만 받아도 5년간 피선거권을 박탈하고 공직 취임을 제한하는 그 엄격한 잣대가, 왜 선관위 수뇌부의 불법 채용 앞에서는 솜사탕처럼  녹아내렸을까요? 법의 저울을 들고 있는 심판이, 자신의 저울추를 교묘하게 조작하여 사적 이익의 주머니를 불리는 이 기괴한 현상. 이러한 수뇌부의 꼼수 탈출이 가능했던 이유는 단 하나, 조직 내부에 그들의 폭주를 제어할 수 있는 어떠한 견제 장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고립된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하며, 감시받지 않는 성역은 필연적으로 괴물을 낳는다는 정치학의 오랜 격언이, 21세기 대한민국 한복판에서 완벽하게 증명되고 있었습니다.

솜방망이 징계가 만든 도덕적 해이

수뇌부들이 화려한 ‘명예퇴직’이라는 낙하산을 타고 탈출한 뒤, 남겨진 중간 간부들과 실무자들에게는 어떤 철퇴가 내려졌을까요? 언론의 스포트라이트가 점차 사그라들 즈음, 선관위가 조용히 처리한 내부 징계의 결과표는 또 한 번 국민을 농락하는 수준이었습니다. 선관위 자체 감사와 징계위원회를 거친 비위 관련자 대다수에게 내려진 처분은 ‘주의’‘경고’에 불과했습니다. 공무원 징계 규칙상 주의나 경고는 공식적인 중징계(파면, 해임, 강등, 정직)는 물론 경징계(감봉, 견책)에도 속하지 않는, 말 그대로 ‘가벼운 훈계’에 지나지 않습니다. 인사 기록에 치명적인 오점도 남지 않으며, 일정 기간이 지나면 승진이나 성과급 수령에도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습니다.

  • 면접관들의 기막힌 변명: “상관의 자녀인 줄 몰랐다”, “알았지만 평가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는 뻔뻔한 변명은 징계위원회에서 너무나도 쉽게 수용되었습니다. 블라인드 면접의 취지를 고의로 훼손하고 사전 정보를 유출한 명백한 비위 행위자들조차, “관행이었다”는 이유로 가벼운 경고장 한 장을 받는 것으로 끝났습니다.
  • 징계자들의 화려한 부활: 더 끔찍한 것은 징계의 ‘사후 관리’입니다. 과거 선관위 내부에서 크고 작은 비위나 선거 관리 부실(소쿠리 투표 사태 등)로 경징계를 받았던 직원들이, 불과 1~2년 뒤 슬그머니 핵심 요직으로 영전하거나 승진하는 사례는 선관위 내에서 흔한 풍경이 되었습니다. “소나기만 피하면 된다”는 굳건한 믿음이 조직 전체에 뿌리내린 것입니다.

이러한 ‘솜방망이 징계’의 반복은 조직 내부에 치명적인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를 낳았습니다.

직원들의 머릿속에는 하나의 명확한 행동 지침이 각인됩니다. “법과 원칙을 지키며 내부 비리를 고발하는 ‘모난 돌’이 되면 조직에서 매장당하지만, 상관의 불법적인 지시에 눈감고 동조하면 설령 발각되더라도 조직이 나를 보호해 준다.” 부패에 동조했을 때 얻는 이익(승진, 보은, 네트워크)은 확실하고 크지만, 적발되었을 때 치러야 할 비용(가벼운 주의, 징계 없는 사퇴)은 너무나 작습니다. 범죄의 기대 수익이 처벌의 위험을 압도하는 구조 속에서, 선관위 직원들에게 ‘청렴’을 기대하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 가게의 경비를 맡기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결국 솜방망이 징계는 단순한 제 식구 감싸기를 넘어, 미래의 범죄를 독려하는 강력한 ‘인센티브로 작동하게 된 것입니다.

감시자가 사라진 갈라파고스, 괴물이 되어버린 성역

왜 선관위는 이토록 뻔뻔하게 제 식구를 감싸고, 국민의 눈높이와는 철저히 동떨어진 그들만의 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까요? 그 근본적인 해답은 선관위가 외부의 어떤 생태계와도 교류하지 않는 ‘행정의 갈라파고스Galapagos)’라는 점에 있습니다. 자연계에서 천적이 없는 갈라파고스 제도의 생물들이 기형적으로 진화하듯,‘외부의 감시와 견제’라는 천적이 존재하지 않는 권력 기관은 반드시 부패라는 기형적 형태로 진화하게 마련입니다.

  • 비상임 위원장 제도의 맹점: 대한민국 선관위의 수장인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은 관례상 대법관이 겸임합니다. 선거철이 아닐 때는 일주일에 한두 번 출근하여 결재 서류에 도장만 찍는 ‘비상임’ 구조입니다. 현장 실무와 내부 인사 시스템의 내밀한 흑막을 알 리 만무합니다. 사실상 선관위를 지배하는 것은 평생 선관위에서 잔뼈가 굵은 사무총장(장관급)과 내부 승진자들입니다. 외부 통제는커녕 상층부의 내부 통제마저 실종된 구조입니다.
  • 내부 고발자의 무덤: 고립된 섬에서는 배신자에 대한 보복이 가장 가혹합니다. 앞서 7부에서 언급했듯, 선관위 내부는 끈끈한 가족주의와 기수 문화로 얽혀 있습니다. 만약 누군가 용기를 내어 채용 비리나 솜방망이 징계의 부당함을 내부망에 폭로한다면, 그는 철저한 왕따가 되어 한직으로 쫓겨납니다. 외부 수사기관의 도움을 청하려 해도 “선거 개입”이라는 프레임에 막혀 진상 규명이 흐지부지되기 일쑤입니다.
  • ‘헌법’이라는 전가의 보도: 다른 정부 부처라면 국정감사나 언론 보도로 이 정도의 비리가 터졌을 때, 대통령이나 국무총리가 직접 나서서 대대적인 인적 쇄신과 감사원 감사를 지시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선관위는 삼권분립의 틈새에 절묘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행정부의 지시를 받지 않고, 입법부(국회의원) 역시 자신의 당선과 선거법 위반 여부를 쥐고 있는 선관위를 강하게 압박하는 것을 껄끄러워합니다.

이러한 완벽한 고립과 권력의 공백 지대에서 선관위는 ‘견제받지 않는 절대 권력’으로 군림해 왔습니다. 스스로를 정화할 능력을 완전히 상실한 채, 썩어 들어가는 상처를 도려내기는커녕 화려한 비단으로 덮어 가리기에 급급했습니다. 그들이 덮고자 했던 것은 단순한 채용 비리가 아닙니다.  그것은 ‘공정한 심판’이라는 선관위의 존재 이유 그 자체의 죽음이었습니다.

부러진 저울을 든 심판을 누가 믿을 것인가?

이번 컬럼을 통해 우리는 ‘아빠 찬스’라는 거대한 비리가 발각된 이후, 선관위가 어떻게 조직적으로 범죄를 은폐하고 가담자들에게 면죄부를 주었는지 그 적나라한 ‘자정 능력의 상실’ 과정을 지켜보았습니다.

  – 핵심을 비켜 간 맹탕 ‘셀프 감사’

  – 징계를 피하고 수억을 챙겨 떠난 수뇌부들의 ‘꼼수 사퇴’

  – 남은 비위자들에게 승진의 길을 열어준 ‘솜방망이 징계’

이 일련의 과정은 우리에게 한 가지 섬뜩하고도 명확한 진실을 일깨워줍니다. “자신의 허물조차 단죄하지 못하는 조직이, 감히 국가의 명운이 걸린 선거의 불법을 단죄하겠다고 나설 자격이 있는가?” 고장이 나서 기울어진 저울을 들고 시장에 앉아 있는 상인을 신뢰할 손님은 없습니다. 채용 과정에서 조작과 편법을 일삼고, 그 비리를 은폐하기 위해 규정을 자의적으로 뜯어고친 자들이 관리하는 투표함과 개표기를 국민이 어떻게 100% 신뢰할 수 있겠습니까? 4부에서 다루었던 그 수많은 ‘부정선거 의혹’들이 단순한 음모론으로 치부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시스템 이전에, 시스템을 굴리는‘사람과 조직의 신뢰’가 이미 밑바닥까지 파산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기나긴 병폐의 가장 깊은 뿌리를 향해 칼날을 겨누어야 할 때입니다. 지금까지 선관위가 온갖 비리와 무능(소쿠리 투표, 해킹 방치, 채용 비리, 제 식구 감싸기)을 저지르고도 무사할 수 있었던 최후의 방어막. 그들이 입버릇처럼 내세우며 외부의 모든 감시를 차단했던 마법의 주문, 바로 ‘헌법적 독립성’입니다. 과연 1960년 3.15 부정선거의 참상을 딛고 선조들이 피 흘려 쟁취했던 선관위의 ‘독립성’은 이런 괴물을 염두에 둔 것이었을까요?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부여한 강력한 방패가, 어떻게 권력을 사유화하고 부패를 수호하는 강철 장막으로 변질되었을까요?

다음 9부에서는 선관위 사태의 본질이자 가장 뜨거운 논쟁거리인 ‘독립성과 견제 사이의 딜레마를 정면으로 다룹니다. 감사원의 직무 감찰 거부 사태를 중심으로, 헌법을 방패 삼아 성역에 숨어버린 선관위의 권력 구조를 낱낱이 해부합니다.

(9부: ‘헌법적 독립성’이라는 방패와 견제 없는 권력 – 에서 계속됩니다.)

댓글 달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위로 스크롤